[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찬욱)


  도무지 3살짜리 아이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헌데 신기한 것은, 3살짜리 아이의 형/누나인 5살짜리 아이는 3살짜리 아이의 말을 용케도 잘 알아듣는다. 이것은 대구 사람 말은 대구 사람만이 알아듣고, 광주 사람 말은 광주 사람만이 알아듣는 것이랑은 좀 다른 문제다. 대구 사람이든, 광주 사람이든 두 사람은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서울말’이라는 공통된 규범을 알고 있고 노력하면 얼추 근사하게 ‘서울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전적으로 광주 사람한테만 통하는 규칙이라든지 대구 사람에게만 통하는 규칙은 없다. 그러나 3살짜리 아이의 말은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그림을 그릴 때처럼,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작게 그린다는 이러한 조그마한 법칙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3살짜리 아이의 말은 도무지 받아 적을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법칙을 알아 낼 수도 없다. 그러나 3살짜리 아이는 5살짜리와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통한다. 이렇듯 감추어진 것만 같았던 것을 투명하게 알고 싶으면, 감추어진 세계 속에 존재자들의 규칙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들 사이에만 공유되는 룰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다 대놓고, “너희들은 왜 룰을 너희끼리만 공유하냐. 같이 소통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서로의 차이만을 확인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일 테니까. 아쉬운 놈이 우물판다는 격으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룰을 이해하는 수밖에는 없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어쩌면 이런 영화다. 정상성/비정상성이라고 크게 두 범주로 나누어 보았을 때(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정상인은 정상인과만 소통을 하고, 비정상인은 비정상인과만 소통을 한다. “정신병자”인 영군은 절대로 의사와 오감이 찌릿찌릿 통한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영군(임수정 분)이 이야기하는 바는 의사에게 낱낱이 보고되고 기록되어 영군을 진달할 자료로만 쓰일 뿐이다. 영군의 이야기는 의사에겐 일종의 망상일 뿐이다. 하지만 신기하다. 영군이가 3살짜리였다면, 일순(정지훈 분)은 5살짜리처럼 영군의 맘을 그렇게도 잘 알아준다. 영군이 말하는 바는 일순에게 필터를 거쳐 해석을 해야만 하는 미지수가 아니라, 말 자체가 영군의 존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일순에게는 영군이 싸이보그로 현상될 수 있다. 영군의 말을 일순만이 일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일순은 “목요일”도 훔치고, “탁구 서브”도 훔치고, “폐 끼치는 미안한 마음”도 훔치고, “동정심”도 훔칠 줄 안다. 그의 “훔치心”이 작동하면 못 훔치는 게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순이 무언가를 훔치면, 모든 “비정상인”들에게는 그대로 효력이 발생한다. 그래서 덕천님(오달수 분)이 자신의 겸손한 마음을 도둑맞고서, 간호사 및 의사 “정상인” 무리에게 “니들이 폐 끼친 마음을 알아 xx!” 라고 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 색깔 톤처럼 “비정상인”들은 경계가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원색 보다는 흐리멍덩하고 무슨 색인지 확실히 감히 안오는 파스텔 톤에 가깝다. 파스텔 톤이기에, 원색에 가까운 사람들은 저것도 색이냐며 아직 색이 되기는 멀었다며 자꾸자꾸 교육시키고 계몽시키려 들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파스텔 톤인 사람들은 파스텔 톤이 좋은 것을.. 파스텔 톤을 담기 위해 필름 카메라가 아닌 ‘HD 바이퍼 카메라’로 찍은 영화다. 필름 카메라의 매력과 비교해보시고, 나와 전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감춰진 이면을 속속들이 알아보는, 가렸던 것이 투명해지는 쾌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by forveritas | 2007/10/28 18:33 |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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