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호장룡(臥虎藏龍)>(2000)

<와호장룡(臥虎藏龍)>(2000년, 119분)

감독 : 이안
무술감독 : 원화평
음악 : 탄둔
주연 :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장첸, 정패패




 스포일러 왕창 있습니다.


  <와호장룡>은 합이 잘 짜여진 무술 액션 장면이 가득하고, 붕붕 날아다니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초반부에 소룡(장쯔이 분)과 수련(양자경 분)이 벌이는 액션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이렇게 심장 뛰는 액션 장면을 지금부터 보여줘 버리면 나중에 어쩌려는 걸까? 계속 보여주겠다는 건가? 아님.. 싱겁게 끝나버리는 거야?" 하는 걱정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후의 영화 전개는, 보고 있자면 참 감동스럽습니다. <와호장룡>이 감동적인 이유는, 제가 초반에 기대했듯 초반부의 활력있는 액션 장면들이 무지무지 많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CG로 공들여 만든 북경의 밤 장면이나, 북경의 야음을 틈타 지붕위로 날아다니는 복면 협객 소룡이나, 탁트인 고비 사막, 그리고 고비 사막에 로호(장첸 분) 패거리들이 말을 몰고 달려다닐 때 일으키는 먼지들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앞으로 이어질 액션 장면을 왜곡했었죠. 그리고 영화는 매트릭스에서도 무술 감독을 맡았던 원화평이 가세한 만큼이나, 멋드러진 액션 장면들을 선사해줬습니다. 하늘하늘 거리는 청명한 대나무 숲에서 벌어지는 이목백과 소룡의 대결, 이건 뭐 머릿 속에서나 가능한 음악적인 리듬감이 눈 앞에 펼져쳤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 대결 장면을 어떻게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즉, 액션 장면이 드라마에 의해 절제되어 있고 나아가 액션 장면들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죠. <와호장룡>에서 볼 수 있는 액션 장면, 경공술 등은 단순히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에 청명검을 훔쳐서 달아나려고 하는 소룡과 수련 사이에 벌어지는 액션 장면을 생각해보세요. 소룡은 끊임없이 달아나려고 하고, 수련은 소룡을 뒤쫓으며 청명검을 빼앗으려 하죠. 천하의 보검인 청명검을 들고 튀었으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소룡이 결혼식 날 도망갈 만큼 자유로운 영혼이며, 수련이 사형 이목백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묵직히 억제하는 캐릭터임을 감안한다면, 소룡이 먼저 날고, 자유자재로 시원하게 날며, 그녀의 권법은 날 것같은 데 비해 수련은 날 더라도 상대를 쫓을 만큼으로만 제한되어 있고, 공중으로 수직부양하는 소룡을 수련이 서너번이나 잡아서 끌어내리고, 안되니까 돌까지 던지며, 무술도 그녀를 제압하려는 데만 그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죠. 이목백과 소룡이 싸우는 장면은 어떻나요. 그들의 대결은 상대에 대한 증오감에 복받쳐서 서로를 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이목백이 청명검 대신 대나무 회초리(?)를 들어 소룡의 검술에 맞대응하는 장면을 보면, 이것은 무술 대결이라기 보다는, 선생이 제자에게 "넌 이러면 안되고, 저러면 안되고, 이렇게 해야한다"하고 훈계하는, 그것도 따뜻이 훈계하는 말씀 같습니다. 객주에서 소룡이 강호 호인들을 깡그리 물리치고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어떤가요. 객주의 1층에서 2층, 객주 바깥에서, 다시 객주 2층 바깥 난간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객주 내부로 와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녀의 율동감이나, 퍼포먼스 끝에 무너지는 난간의 리듬, "내일은 무당산으로 갈테다"라는 대사를 치면서 보여주는 그녀의 검무 속에는 천하에서 제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소룡의 소녀같은 천방지축이 뚝뚝 묻어나옵니다. 엔딩도 정말 좋죠. 영화는 항상 무엇인가로부터 도망가려 할 때만 날았던 소룡이, 최초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발 아래 깊은 안개/구름 속으로 날아들면서 끝이납니다. <와호장룡>을 보면서 조용히 흐느끼는 이유는, 자유롭고자 하는 영혼, 감정을 억제하는 영혼, 바른길로 계도시키려는 영혼들의 모습이 액션과 경공술을 통해 외적으로 재현되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by 김탁구 | 2008/10/28 03:24 | 영화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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